June 23rd, 2017 Fri

[제주] 신치호, 지구를 사랑한 예술가

in Category 사람

글•사진 | 홍창욱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저자)

신치호는 제주에 산다. 그가 이끄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 그룹 RE:는 버려진 폐품에 디자인과 상상력을 접목시킨다. RE:의 손을 거치면 보잘것없던 폐품도 두 번째 생명을 얻어 명품이 된다. 무엇이든쉽게 버리고, 또 버려지는 이 세상에 그들이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

 업사이클링 디자인 그룹 RE:의 신치호 대표

업사이클링이란 무엇인가?

‘업사이클링’은 기존의 ‘리사이클링(Re-cycling)’에서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이다.
단순히 폐품을 재활용 하는 수준을 넘어 폐품에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가미해 또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을 뜻한다.

RE:에 대해서도 소개해달라

RE: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그룹이다. RE:라는 이름에는 자원이 순환되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고, 우리말로 친숙 하게 ‘알이’라 부른다. 알이는 버려지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한다. 자원 절약과 환경보호에 일조해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지구를 물려 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어떤 자재로 업사이클링을 하는지 궁금하다.

버려진 목재, 철재, 유리, 바닷가에서 주운 쓰레기까지… 모든 폐품들을 이용한다.
그중에서도 집 철거 중에 나온 문짝부터 창문틀, 간벌된 나무들, 조각목 등 목재를 가장 많이 쓴다. 왜냐하면 목재는 최소 20년에서 50년 이상 자란 나무들인데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폐목재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면 불필요한 나무를 벌목하지 않아도 되고, 숲을 가꾸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제주에 정착한 지는 얼마나 됐나?

2010년 12월 제주에 왔다. 4년 정도를 제주에서 보냈다.

제주는 아무래도 섬이다 보니, 업사이클링을 위한 자제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왜 하필 제주에 왔나?

제주도는 전국에서 폐자재가 가장 적게 발생하는 곳이다. 그러나 땅이 좁은 탓에 발생하는 폐자재들은 모두 소각 된다. 그런 면에서 제주를 기회의 땅이라 생각했다.
알이를 통해 제주가 폐자재를 적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폐자재 발생률이 0%인 섬이 되기를 바란다. 이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제주는 전국 나아가 전세계가 주목하는 업사이클링의 메카가 될 것이다.

제주도 인구수는 60만명이 채 안 된다. 거주민이 적고, 그에 따라 시장이 한정되다 보니 판매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고객을 제주 거주민에 한정 짓지 않는다. 제주에 모이는 1천 만명의 관광객들도 알이의 고객이다. 그래서 론칭 초기부터 만원 내외의 가격 부담은 없지만 제주를 기념할 만한 제품들을 폐목재로 만들었다. 연필꽂이와 필통, 명함 꽂이, 컵받침 등 아기 자기한 소품들을 제주 내 작은 카페 및 소품샵 등에서 판매했다.

 업사이클링의 세계는 소품부터 가구 디자인,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결과는 어땠나?

첫 3~4개월은 매출이 10원도 없었다. 제주 내 기념품 숍들이 이미 중국에서 대량생산된 소품들을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 이다.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의기투합했던 동료 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그제서야 홍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자원의 올바른 순환이라는 사회적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홍보 가 필요한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다.

홍보는 돌파구가 되었나?

다행히 업사이클링 기업들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여러 언론사 에서 알이에 관심을 가져줬다. ‘제주 1호 업사이클링 기업’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알이 제품을 찾는 고객들도 차차 늘어갔다.

알이의 대표 작품들을 소개해달라.

제주 올레 코스에서 보이는 조랑말 모양의 간세 스탬프함이 알이의 첫 작업물이었다. 또 환경단체가 운영하는 공익성 카페 ‘커피스타’의 인테리어도 담당했다. 사실, 우리집 말고 다른 공간의 인테리어를 맡은 것은 처음이었다. 처녀작이다 보니 더욱 열과 성을 다했다. 지금 보면 서툴고 어설프지만,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중 하나다. 최근에는 도예가가 운영하는 찻집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을 진행했다.

제주에서도 공방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DIY로 직접 필요한 가구 등을 만든다면 적잖은 성취감이 따라온다. 몇 mm의 오차는 생기겠지만,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과 사용감은 그를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 똑같이 생긴 양산품이 아니기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이 된다. 이것이 공방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가 아닐까?
또한 제주는 가구가 비싸다. 습기가 많아 나무로 하는 작업이 상대적으로 어렵고(그래서 ‘제주 목수가 최고’라는 말도 있다), 자재 공급에 높은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혹여 인터넷에서 주문한다 해도 배송비가 어마어마하다. 제주에 유입되는 인구수에 비해 제주 가구 시장은 아직 미성숙 단계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차 나아질 테고 공방이나 업사이클링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디자인에 대해 얘기해보자.

업사이클링은 디자인이 간결하다. 아름답기 위한 부가적인 장치들을 배제한다. 오히려 최소한의 기능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폐자재가 가진 상처나 흠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포인트다. 미니멀함, 유니크함이 업사이클링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세계 적인 가구 트렌드 역시 업사이클링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알이의 작품은 어디서 볼 수 있나?

우리는 한번 활용한 디자인을 다시 쓰지 않는다. 그리고 평생 A/S를 제공한다. A/S를 제공하지 않아 구입 고객이 우리 제품을 버린다면, 비싼 쓰레기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S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결점에 도전하고 있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 들었다.

나는 ‘고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소위 ‘노가다’를 했고, 여러 아르바이트들을 전전하다가 편의점을 열었다. 당시 꿈은 ‘착한 부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정말 우연한 계기에 인권 운동가가 됐다.
돈에 구애 받지 않고 배움이 깊은 대단한 사람 들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나도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좀 더 넓은 지평으로 세상을 바라 보게 됐다.
삶의 방향이나 진로도 바뀌었다. 또 돈은 중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별 의미 없는 물질임을 깨달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도 해봤다. 이후 서른이 넘어서는 인권단체를 그만두고 고물상에서 일했다. 말 그대로 고물인 잡동사니들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뜯고, 붙이고, 고쳐봤다. 재미도 있었고 의미도 있었다. 지금의 알이와도 연결되는 작업이다.
이후엔 시민들이 기부한 물건들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려주는 ‘아름다운 가게’의 재활용 디자인팀 ‘에코 파티 메아리’에서 일했다.
그리고 지금 알이에 이르기까지 돌고, 돌고, 돌아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제주 송당리에 위치한 RE: 사무실.

알이가 자리한 송당리가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송당리에는 우거진 삼나무들 사이로 찻길이 나 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만 해도 그 차도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 모습이 좋았다. 꼭 송당리에 회사를 세우고 싶었는데 동네 주민 들의 반대가 거셌다. 마을 이장님을 몇 개월 동안 설득해 송당리에 안착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동네 분들과도 천천히 정이 오고 갔다. 할머니들은 고장난 상다리부터 별별 망가진 물건 들을 가지고 와 고쳐달라 하셨고, 밤에는 불이 켜진 유일한 공간이다 보니 술꾼들이 모여들었다. 관심이고 정이지만 일이 바쁠 때에는 정말 괴로웠다(웃음). 그분들 모두가 알이의 친구 이고, 돌이켜보면 따뜻한 추억이다.
허허벌판이던 송당리는 불과 몇 해 만에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만 수개에 이르는 관광지로 발전했다.

송당리는 어떤 매력을 가진 마을인가.

‘신들의 고향’이라고 한다. 전통굿도 열리고, 마을을 둘러싼 경관이 몹시 아름답다. 특히 다양한 오름들은 송당리를 특별 하게 하는 매력 포인트다. 혹자들은 송당리가 습해서 지네가 나온다고 하던데, 반대로 생각하면 도시 생활이 정전기가 일어날 정도로 건조한 것 아닌가? 이 정도의 습기는 우리 건강 을 해치지 않는다.

제주 4년차다. 이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제주살이에 대해 조언해준다면

90년대에 귀농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다수가 실패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제주도 마찬가지이다.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정착은 결코 쉽지 않다. 막연한 꿈이나 낭만 만으로 제주를 찾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도시 생활과 비교해 제주살이는 낙후되고 불편한 점이 많다.
그러나 삶은 살아내는 것이다. 어디나 힘든 건 마찬가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과 바다, 오름, 정 많은 제주도민들 때문일 것이다.

신치호 대표, 그리고 알이의 꿈은?

알이가 문화적 사회적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일생을 바칠 각오다. 그리고 알이를 보고, 듣고, 만나는 모두가 버린다는 것, 버려진다는 것, 자연, 지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준다면 그만으로 값진 인생이지 않을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과 사용감은 업사이클링만이 주는 감동이다.

Vol 23 of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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